이미 주식시장을 경험한 투자 선배들 중에는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을 걱정하는 그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여차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릴 기세로 절대 주식투자하지 말라고 한다. 그들에게 주식시장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그리고 대주주의 음모가 횡행하는 곳이다. 개인 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으며 그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절한 실패담을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만약 그런 선배가 있다면 왜 그 기업의 주식을 샀는지, 기업의 역사에 대한 공부는 얼마나 했는지 등을 물어보시라. 아마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당시에는 좋았어. 추천하는 사람도 있었고" 라거나 "대주주가 농간을 부렸다" 정도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또 하나 해볼 수 있는 질문은 "투자한 이후에 무엇을 했는가"이다. 아마도 그는 '기업'이 아닌 '주식'과 서툰 연애를 했을 것이다. 주가가 오르면 열렬히 사랑하다가 하락하면 증오하는 '애증의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개인 투자자가 기관, 외국인 투자자를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맞다. 자본, 정보력, 인력을 비롯해 주식투자에 쏟을 수 있는 시간까지, 절대적으로 열세다. "개인 투자자는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나는 다음의 질문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꼭 그들과 싸워야만 하는가?"
기관, 외국인 투자자와 싸운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주식투자를 수급으로 본다는 의미다.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은 주식의 본질인 기업이다.
매년 매출이 늘고 수익도 늘어가는 기업이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인들이 자금을 회수하면서 주가가 급락한다고 하자. 그래도 기업의 수익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면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반대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누군가 대량 매수한다고 하자. 그러면 기업의 가치가 갑자기 올라가는가? 전업투자자로 일하고 있는 나도 외국인과 기관이 왜 사고 파는지, 그들의 자금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야 이러저러한 이유로 국내에 자금이 유입되었구나, 라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나마 이것도 전체적인 그림일 뿐이고, 개별 기업의 어떤 면을 긍정적으로 봐서 매수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알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기업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수급에 흔들리면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기에 딱 좋다. 갑자기 매수세가 폭증할 때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일주일 내내 상한가를 갈 만큼 대형호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호재는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모두가 아는 호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의 기회가 아니다. 외국인, 기관, 작전세력의 수급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칼자루를 내주고 시작하는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의 교훈은 잘났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느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빠른 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이 우화를 읽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도 아니고 단 한 번의 경기로 끝나지도 않는다. 한 번 잠을 잔 토끼는 다음에는 결승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잠을 자지 않을 것이고 더 나은 성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애초에 거북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이 경기를 승낙했다는 데 있다. 토끼가 약을 올리며 달리기 경주를 제안했을 때 거북이는 이렇게 대응했어야 한다.
"좋아! 그럼 내일 해변에서 만나. 저 앞에 보이는 섬까지 왕복하는 거야."
거북이의 다리는 뜀박질이 아니라 헤엄에 최적화되어 있다. 왜 짧고 굵은 다리로 달리기 경주를 하는가. 이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왜 거대 자본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수급이라는 경주를 하는가. 왜 최강의 정보력을 가진 그들과 정보력이라는 경주를 하려고 하는가.
개인 투자자들은 시간이라는 종목의 경주를 해야 한다. 이는 장기투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관과 외국인(사실 말이 '외국인'이지, 세계인의 돈이 모인 '거대 자본'이다)은 팔아야 할 때가 있고 사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마음에 드는 기업,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기업이 나타날 때까지 투자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주가가 올라도 매도하지 않고 더 기다릴 수 있다. 평생 가지고 있다가 자식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도 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보면 '느긋함'이다. 도가 튼 느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을 꼼꼼하게 살피고 지켜본 다음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 그러다가 언제 투자해서 언제 부자가 되느냐는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부실한 상장사들이 대부분이라면 대한민국 경제가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꼼꼼하게 살펴본 후 투자를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투자를 서툰 연애처럼 해서는 안 된다. '왜 더 사랑해주지 않느냐'라고 칭얼거리는 것이나, 일단 투자해놓고 '왜 주가가 상승하지 않느냐'라고 투덜거리는 것이나 미성숙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길게 지속하면서 그 깊이를 더해가는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가능하다. 투자도 그렇다. 기업의 주인이 된 다음에 관찰과 소통이라는 정성을 쏟아야 시간이 여러분의 편이 되어준다.
현란하게 오르내리는 시세는 여러분에게 지금 당장 경주를 시작하자고 유혹한다. 당신이 불리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 모르는 거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딱 봐도 짧은 건 굳이 대볼 필요가 없다. 인생 모르는 거라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서 '의외'인 것이다. 서두를 것 없다. 충분히 공부하면서 투자해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내실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해 공부를 하던 중에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인정해서 주가가 제 가치까지 상승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헛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다. 여러분의 실력이 상승했으니까 말이다.
주식투자는 치열한 노동이다
타인의 성공은 달콤해 보인다. 그가 누리고 있는 지위, 명성 그리고 부까지, 내가 저렇게 성공한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백일몽을 꾸기도 한다.
섬유가공 공장에서 일할 때 내가 꾸던 백일몽은 공장장이었다. 밖에 나가면 그저 늙수그레한 아저씨일 뿐인데 공장에 들어가면 달랐다. 기계가 멈춰 서면 마치 화타처럼 원인을 짚어내고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나에게는 공장장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이었다. 공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가서도 생산관리, 원가회계 등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공부들은 공장장이라는 일의 극히 일부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화공약품 냄새를 견디면서 말 안 듣는 기계를 붙들고 씨름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방송에서 누렇게 익은 벼를 보여주면서 풍요의 계절을 운운한다. 그러나 시골에서 자란 나로서는 이른바 황금들녘이 풍요로만 보이지 않는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이 보이고, 풀물이 들어 새까만 손톱 밑이 보이고, 손금보다 진하게 갈라진 거친 손바닥이 보인다. 그을린 얼굴, 새까만 손톱, 거친 손바닥의 주인이 황금 들녘이 주는 풍요로움의 진짜 주인이다. 그들만이 벼를 쓰다듬으면서 이것이 풍요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여러분이 받는 월급은 정말 큰돈이다. 만약 그 또래의 조카가 "좋겠어요. 매달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꾸할까. 기가 막혀서 꿀밤이나 한 대 먹이고 돌아서지 않을까.
주식투자로 번 돈은 자주 불로소득으로 간주된다. 그들의 구분법에 따르면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여의도에 사무실도 있고 직원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나와 직원들은 여기 모여서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현장탐방이랍시고 전국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새벽에 일어나서 세계시황을 살피는 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눈은 자주 씀벅거리고 때로는 코피를 쏟기도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그들은 도대체 왜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이 내 자산을 거론하면서 부럽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운이 따라준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엎드려 절 받는 것 같아 머쓱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면 그에게 할 말은 이것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어요?"
부럽다는 감정만으로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렵다.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야 그것을 참고해 자신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들은 사람도 자신의 고생을 알아준다는 느낌 때문에 최대한 많은 노하우를 알려주려고 할 것이다.
혹은 이런 질문도 가능하겠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셨어요?"
멋진 몸매를 가진 연예인들이 몸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뭔가 남들과 다른 성과를 내려면 그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한다. 친구와의 술자리든, TV 시청이든, 게임이든, 잠자는 시간이든, 기존에 하던 뭔가를 포기해야만 새로운 뭔가를 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의 성공은 그의 것이다. 함부로 부럽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아름다운 동작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발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은 개인 투자자의 절대무기이면서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시간을 절대무기로 활용하기 위해선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를 시작한 사람은 100만 원이 200만 원이 되고, 200만 원이 400만 원이 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발레리나의 발을 떠올릴 줄 아는 투자자는 '만만치 않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시간을 인내와 노력으로 채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인생 뭐 있나. 그냥 즐기면서 살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결단에 결단을 거듭해야 한다.
주식투자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매수를 클릭하면 펑 하면서 순식간에 수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무와 같다. 나무는 온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성장하는 순간을 알아챌 수 없지만 열심히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다. 투자 수익금은 불로소득이 아니다. 치열한 노동의 결과다. 여러분이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해주길 바란다.
돈, 일하게 하라_ 주식농부 박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