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주기에 따른 '집'의 의미
지인 A씨는 요즘 집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바쁩니다. 아이를 유학 보내기로 결정하고, 학비 때문에 집을 줄여 옮기려는 것입니다. 빠듯한 월급에 유학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언니들에 비해 공부가 떨어지는 막내가 치일까봐 원하는 대로 밀어주고 싶어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분을 보면서 1950년대 '우골탑'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우골탑'이란 등록금이 비싼 '대학교'를 이르는 말로, '소뼈로 쌓은 탑'이란 뜻입니다. 자녀를 대학 공부시키려고, 소를 팔아서 등록금을 대던 상황을 빗대어서 표현한 말입니다. 예전엔, 땅이 없는 농민들의 가장 큰 자산이 '소'였습니다. 그래서 급전이 필요하면 소를 팔아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대신 '집'이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집'은 이렇게 가족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자산으로서, 자식들의 '학비'와 '결혼자금'이 되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노후 대책 자금'이 되기도 합니다.
지인 B씨는 수도권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 나오려고 하는데, 1년 넘게 집이 팔리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나오려고 하는 이유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대학생 자녀들이 학교 다니기에 교통이 불편해서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집값 차이가 많이 벌어져서, 이제는 집을 팔아서, 가진 돈을 다 합쳐도 원하는 집으로 갈아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집을 살 때 너무 근시안적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목동 아파트를 팔아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고, 거기서도 또 대형으로 갈아탈 때, 당장 편한 것만 추구했을 뿐 그 다음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자책합니다.
집은 '생애 주기'에 따라 바라보는 초점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자녀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아이들 행동반경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직장 외엔 교통이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의 교육환경이 좋은 곳이 살아가는 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교는 집 가까운 곳을 선택해 가는 것이 아니고, 대학생이 되면 행동반경이 커져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교통 편한 주거지가 중요합니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부부만 남게 되었을 때는, 넓은 집보다는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지고 교통이 편한 곳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자식보다는 친구를 많이 의지하는 시기라,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병원 찾을 일이 많아지면, 가까운 곳에 대형병원이 있어야 하고, 몸이 아플 때 자식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에 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경우 비상금 역할을 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금화가 쉬운 집이 좋습니다.
그래서 50대 후반부터는 대형 평수 한 채보다는 중소형 여러 채가 좋습니다. 식구가 줄어들어 큰 평수가 필요 없기도 하고, 대형보다는 중소형이 현금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형 한 채만 지니고 있는 경우, 집 융자를 받아서 상환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팔았다 해도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떨어지고 적응력이 떨어져서 이사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거주하는 집이 비상금이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한 시기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다음 생애 주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들 어릴 때 좁은 집이 답답하다고 핵심지의 좁은 아파트를 팔고 외곽의 넓고 쾌적한 아파트로 옮겼는데,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 학교가 멀어서 자취하겠다고 나가서 생활비가 두 배로 들고, 넓고 썰렁한 집에 두 부부만 남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애들 어릴 때 잠시 넓은 평수에 전세 들었다가, 아이들 크고 나서 다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좋은데 말입니다.
현재에만 너무 집중해서 여유를 즐기다 보면 자산이 줄어들어서 원하는 공간에 살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왜 고향으로 내려갔을까
"어제 맨 끈은 오늘은 허술해지기 쉽고, 내일은 풀어질 수도 있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심한 마음'도 나날이 여며야 지켜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집 하나를 지키는 것도 마음을 여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70대 지인 C씨는, 잠원동의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원래 잠원동 아파트에 살고 계셨는데, 남편이 교환교수로 외국에 나갈 때 살 던 집 전세금을 빼서 한 채 더 사놓고 가셨답니다. 돌아와서 융자받아서 전세 빼주고 들어가 살면서, 아이들 학비 대랴 융자 갚으랴 힘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지의 아파트 두 채를 지니고 있는 것을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한창 경제활동할 때는 몰랐는데, 나이들어서 경제력이 떨어지니까 요지의 아파트가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고 하십니다.
반면, 이분과 같은 아파트 살던 친구는, 잠원동 아파트를 팔아서 수도권으로 이사 갔는데, 지금은 고향으로 내려가셨다고 합니다. 이사하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어뒀는데 몇 년 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자녀들 결혼자금이 필요해서 살던 집을 팔고 집값이 싼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 고속버스 타고 오면서, 그때 특별히 생활이 어렵지도 않았는데 왜 잠원동 아파트를 팔았는지 모르겠다면서, 후회한다고 합니다.
나이들어서 고향에 내려가서 살면 좋지, 뭐가 어떠냐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나이들면 대부분이 오래 살았던 곳을 떠나기 싫어합니다. 고향 산천도 10년이면 바뀐다는 말이 있는데, 친구들도 없는 고향에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내려가서, 자식들과 친구들이 있는 곳만 바라본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집을 '거주 개념'으로만 본다면, 그분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집은 '거주 개념'외에 '재테크 개념'도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목표의식'이 필요합니다. '목표의식' 없이 집을 옮기다 보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점점 중심지에서 멀어져서, 전혀 원치 않는 곳에 도달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살고 있는 집을 지키는 것도 '소극적인 재테크'입니다. 정부대책으로 세금이 조금만 부담스러워져도, 부동산 흐름이 조금만 하향세로 흘러가도, 집을 팔려고 부동산을 드나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부동산 대책은 오래 지속된 역사가 없습니다. 집값 흐름도 주기가 있고 하향세를 타다 보면 어느새 상승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그나저나, 집을 팔아서 손에 들고 있는 돈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요?
지인 D씨는 현재 '무주택 월세'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2006년까지 잠실주공 1단지에 자가로 거주하던 분입니다. 잠실주공 1단지는 지금 재건축돼서 20억 육박하는 '잠실엘스'아파트가 되었는데, 어쩌다가 '무주택 월세'를 살게 되었을까요?
그분은 결혼 초에, 1억 융자를 받아서 잠실주공 1단지를 사서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대출 이자 내면서 쪼들리는 게 싫다고, 2006년 재건축 이주 시점에 4억에 팔아서 융자를 갚고, 나머지 3억으로 근처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전세가 오르자 다시 강동의 재건축 아파트 전세로 옮겼다가, 애들 학비 들어갈 시점엔 월세로 돌리고, 보증금을 모두 소진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직 경제활동이 가능할 때, 분양가 싼 수도권에라도 살 집을 마련하라고 해도, 부인이 분양금 내는 게 부담스럽고, 친구도 없는 경기도로 떠나기 싫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지금대로 살다가 퇴직 후엔,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그분의 부인이 추구하는 것은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일견 멋있게 사는 것 같지만, 퇴직 후에 월세 낼 형편이 안 될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자식들에게 기대는 것 외엔 아무런 대책이 없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재건축되는 기간 3~4년 정도만 버텼으면, 입주 시점에 전세비만 빼서도 그동안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동산 투자는 편한 대로 흘러가고자 하는 '원심력'에 대항해서 '구심력'으로 견디고 버티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구심점이 되는 '목표의식'이 집을 사고파는 데도 꼭 필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강남에 집 사고 싶어요'_ 오스틀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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