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파격적인 조건의 분양가를 앞세운 분양 광고를 접하게 됩니다. 아무리 못해도 인근 지역 시세가 평당 1,500만 원은 될 텐데 평당 1, 200만 원대 분양가로 아파트를 짓겠다는 식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분양은, 전부가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은 경우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을 모집하는 내용입니다.
어차피 내 집만 마련하면 되고, 심지어 시세보다 싸게 집을 살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역주택조합은 절대 물어서는 안 되는 독 사과입니다.
우선 지역주택조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분양은 건설사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당해 프로젝트에서 미래에 발생할 현금 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등을 일으켜 토지를 선 매입한 후, 사업계획승인을 득한 상태에서 분양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입주자는 어디까지나 해당 건설사의 고객이며, 정해진 분양가에 맞추어 대금을 납부하면 추가 부담금이나 변동 사항 없이 입주가 가능하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건설사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의 지위부터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조합원은 해당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 추진의 주체로서, 이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과 책임을 감당하게 됩니다. 건설사는 해당 조합으로부터 시공에 대한 수주를 받아 건물을 지어주는 시공사일 뿐,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역주택조합은 대부분 해당 부지의 땅을 소유한 지주들로부터 '토지 사용 승낙'을 얻고 조합원을 모집하는데, 실제 조합원이 모집되고 공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실제 토지 매입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몇 년씩 사업이 장기 표류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토지 매입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조합원들로부터 충당해야 하므로 자금 부담이 크고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도 큽니다.
조합원을 모집하는 시점이 '토지 사용 승낙' 단계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재개발사업에서의 조합설립인가와 사업계획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조합원이 순조로이 모집되어 예정 건설 가구 수를 충족하면 문제없지만, 생각보다 모집이 지지부진해서 일정이 지연되면 자연히 입주 시점도 연기됩니다. 사업계획승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조합원이 모였다고 해도 재개발을 위한 각종 인허가 절차가 남았는데, 도시계획상 불허 사유가 있거나 각종 영향 평가 등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를 넘어서는 데 또다시 시간이 걸립니다.
이러한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모집 광고가 많은 이유는, 이런 사업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한 수익을 가져다 주는 사업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역주택조합 분양을 주선하는 주체는 조합이 아닌 업무대행사입니다. 아직 조합원이 모집되거나 조합설립도 되기 전이니 조합은 실체가 없고, 분양 상담사들로 구성된 대행사가 홍보 책자를 찍고 모델하우스를 지어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통상적으로 조합원 1인당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 내외의 비용이 업무대행비로 지불되는데, 이 돈은 조합원 가입과 동시에 지불되지만 일단 지불되면 돌려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세대 당 2천만 원의 분양 대행비를 1천 세대로부터 받는다면 그 돈만 200억 원입니다. 경비를 제외해도 크게 남는 장사인데, 업무대행사 역시 조합원 모집에만 관여할 뿐 실제 프로젝트를 추진시키는 역할은 뒷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조합원이 순조롭게 모집되고 사업승인이 나도 암초는 곳곳에 있습니다. 일단 조합 자체의 비리 문제가 대표적인데, 상대적으로 견제가 느슨하고 일반인이 사정을 알기 어려운 조합의 상황을 악용하여 조합장과 감사 등이 조합 비용을 마음대로 유용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비리는 법으로 단죄하면 그만이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자금은 복구할 방법이 없고 그렇게 되면 사업은 끝없이 표류하게 됩니다.
비리 문제뿐 아니라, 지역주택조합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성을 높이자'는 명분으로 시공사를 변경하는 사례도 자주 발생합니다. 최초 조합원 모집 당시에는 2군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높은 프리미엄을 인정받기 위해 1군 건설사로 변경하여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조합 내부에 이견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시공사가 바뀌면 그에 따른 부가 비용과 시간 소모가 필연적이고, 완공 일정은 계속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초에 약속된 개인별 부담금이 늘어나 추가 분담금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빈번하며, 결과적으로 2005년 이후 추진된 전국 지역주택조합 사업 155개 중 2015년까지 입주가 완료된 곳은 단 34개 사업장뿐입니다. 나머지 121개 사업장은 아직도 표류 중이거나, 완공이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 가격은 눈길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마음을 두지 말고 미련을 접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만, 지역주택조합 사업 중 아래의 요건이 충족된다면 그래도 사업 성공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 해당 부지가 나대지(부지 위에 건축물 등이 없는 상태)일 것.
* 토지매매계약이 기 체결되었거나 지주가 1~2명으로 권리 관계가 단순할 것.
*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어 있는 지역에 편입되어 있을 것.
* 1차 조합원 모집이 이미 완료되고 2차 이상의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을 것.
위 조건들을 모두 충족해도, 평당 100~200만 원 싼 가격에 혹해 잘못 선택했다가 수년의 세월을 마음고생하며 돌려받지 못할 계약금과 업무 추진비만 날릴 수 있습니다. 내 집을 마련할 때는 가급적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고, 가능하면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부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마음고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을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_ 김민규(구피생이)
'부동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_ 신현석 (0) | 2018.05.06 |
---|---|
서울에 집 한 채는 꼭 마련하셨으면 합니다_ 김학렬(빠숑) (0) | 2018.04.21 |
남동향 아파트 VS 남서향 아파트_ 김민규(구피생이) (0) | 2017.11.02 |
동향 저층 아파트가 급매물로 나온 경우_ 김민규(구피생이) (0) | 2017.11.02 |
빌라를 사면 안 되는 이유_ 김민규(구피생이) (0) | 2017.11.01 |
욕심을 버리는 것이, 돈 버는 방법이다_ 신현강(부룡) (0) | 2017.10.31 |
시장의 흐름에 따라 투자 방법도 달라야 한다_ 신현강(부룡) (0) | 2017.10.31 |
'학군'파악으로 돈 되는 아파트 찾기_ 신현강(부룡) (0) | 2017.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