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도 주택 가격이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때문에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과거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변화 방향을 살펴보면 이 주장의 신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4년이다. 당시 한국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대규모 연체로 이어지면서 극심한 내수경기 부진을 겪고 있었다. 이에 한국은행은 3.75%에서 3.25%로 정책금리를 두 차례나 내렸다. 반면 미국은 2003년 초 이라크 전쟁을 고비로 경기가 본격 회복되자 1%까지 인하했던 정책금리를 2004년 인상하기 시작해, 2005년부터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역전되었다.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정책금리가 역전된 2005년,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급등하기는커녕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800원대까지 떨어졌다. 원화 가치만 상승한 게 아니다. 주식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2,000 포인트 돌파에 성공했고 주택 가격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가장 강력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미국보다 금리가 낮은데 왜 우리나라 자산 가격이 급등했을까? 그 해답은 '변동환율제도'에 있다.

 

환율이 일정한 수준에 고정되는 '고정환율제도'에서는 미국과의 금리차가 매우 중요하다. 환율이 변동할 위험이 없어서 금리가 높은 곳으로 자금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금리가 1%인데 미국 금리가 3%라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한국에서 돈을 빌려 미국에 예금하려 들 것이다. 결국 한국 금리는 상승하고 미국 금리는 하락해서 두 나라의 금리가 동일해질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핫머니 자금이 이탈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예전에 높은 금리를 주는 중국에 유입되었던 돈이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이탈하니, 중국 정부가 핫머니 관리에 쩔쩔맬 수밖에 없다.

 

반면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 나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2016년 초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한때 1250원까지 상승했다가 그해 여름에는 1100원 아래로 떨어지는 등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어떤 나라의 금리 수준보다는 '환율의 방향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가 2%, 아니 10% 벌어진다 해도 환율의 변동성보다 적기 때문에 금리 차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는 정책금리 차에 큰 신경 안 쓴다!

 

앞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추세를 결정짓는 세력이 외국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이익이 개선된다 싶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매수해 결과적으로 다시 환율을 떨어뜨리곤 한다.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된 2005년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 해에만 32.8억 달러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한 바 있다. 즉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가 역전되건 상관없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실적'에 주목한 것이다. 같은 현상이 2016년에도 반복되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며 한미 금리 차가 급격히 줄어들었건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2016년 1~11월 동안 무려 121.5억 달러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미국의 정책금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산시장에 거품은 없는지, 내수경기가 위축된 것은 아닌지 등 다양한 변수를 조합해서 정책금리를 결정한다.

 

특히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결정은 소비자물가상승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포인트다.

 

특히 일부 국책연구소에서 정책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금리가 인하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별게 아니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 결정에는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치며, 금리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같은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하나의 변수만 가지고 정책금리 결정을 예측할 수 있으면 그 수많은 채권 분석가와 펀드 매니저들은 왜 그렇게 채권 금리 예상에 어려움을 겪겠는가?

 

고슴도치가 되지 맙시다!

 

너무 쉽게 미래를 예측하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그 진위를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물며 직접 뛰어들어 시장에서 제 돈을 걸고 피 흘려가며 싸우지도 않는 국외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이야기할 때는 '고슴도치와 여우' 우화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테틀록은 여러 다른 영역의 전문가 의견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걸프전쟁, 일본의 부동산 거품, 퀘백이 캐나다에서 분리될 가능성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거의 모든 중요 사건을 대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다.(중략)

 

테틀록의 결론은 사회과학계를 엿 먹이는 것이었다. 그가 살펴본 전문가들은 직업이 뭐든 간에, 경험을 얼마나 오래 쌓았건 간에, 전공 분야가 뭐든 간에 하나같이 동전을 던져 판단할 때보다 낫지 않았다.(중략)

 

테틀록은 전문가가 제시한 답변을 바탕으로 이들을 이른바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양극단 사이의 스펙트럼 위에 분류했다. 고슴도치는 거창한 생각, 즉 세상에 대한 지배적 원칙을 믿으며 '긴장하고 성급하며 경쟁적인' A형 행동 양식 유형에 속한다.

 

여우는 이에 비해 수없이 사소한 생각을 믿으며 또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관심이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유형이다. 여우는 뉘앙스의 차이, 불확실성, 복잡성, 대치되는 의견 등에 좀 더 관대한 측면이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슴도치는 언제나 큰 녀석 하나를 노리는 사냥꾼이라고 한다면, 여우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줍고 다니는 채집자다.

 

여우랑 고슴도치 중에 누구 예측이 더 정확할까?

목소리 큰 고슴도치들의 전망은 엉망진창인 반면, 여우의 전망이 월등히 정확하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고슴도치들이 훨씬 눈에 많이 띈다. 일단 목소리가 크고 극단적인 전망을 제시하니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기 좋지 않겠는가.

 

물론 어떤 인간이 항상 고슴도치로, 항상 여우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필자 역시 90년대 중반 증권업계에서 처음 이코노미스트 일을 시작했을 때는 악명 높은 고슴도치였다. 그러나 20년 넘게 이 업계에서 일을 하다보니 점점 여우로 변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기에, 나도 근거 없는 자신감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도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어" 라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대꾸해보자.

 

"정말 그런지 데이터로 확인해봅시다."

 

인구와 투자의 미래_ 홍춘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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