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기업은 불황을 즐긴다
내가 1989년 주식투자자가 된 이래로 가장 좋아한 기업은 바로 일등기업이다. 일등이 좋은 건 누구나 알지만 기업의 세계에서 일등기업이 유독 좋은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아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시간 속에는 반드시 호황과 불황이 반복하며 존재한다. 불황은 일등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호황이나 불황 중 어느 한쪽만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불가능하다.
사업이 잘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뛰어든다. 화장품이 잘나간다, 조선업이 떼돈을 번다, 그런 뉴스가 나오면 곧바로 경쟁업체가 들어서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땅 사서 공장 짓고, 가게 확장하고, 직원 스카우트하느라 원가가 늘었는데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불황이 시작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급량은 늘었는데 수요가 줄어드니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탄탄한 경쟁력을 가진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결국 일등기업은 불황에서 사라진 꼴등기업의 몫을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호황이 오면 더욱 좋아진다.
<표2-1>에서 보듯이 호황일 때는 다 같이 성장한다. 크든 작든 이익을 나눠 가진다. 그러나 시장이 나빠지면 밑에서부터 하나둘씩 사라진다. 비교열위 기업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일등기업은 즐겁다. 그래서 일등기업의 주주는 불황에도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불황은 확연하게 일등과 꼴등을 분별해준다. 사실 이런 질서는 우리 삶 속에도 있다. 가령 어려운 시험은 기업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불황과 같다. 만약 수능에서 전 과목이 다 어렵게 나왔다 하자. 시험을 치르는 4교시 동안 일등과 꼴등의 점수 차는 계속 벌어질 것이다. 고사장 밖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엄마들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잘 안다. 일등학생은 변별력이 있으니 좋아하지만 꼴등학생은 자포자기할 것이다. 이렇게 일등은 어려울 때 빛을 발한다.
그런데 모든 기업들에서 일등기업의 논리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통신산업, 항공산업 등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퇴출을 막는 산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통신 서비스는 지금 SK텔레콤, KT, LGU+, 3사가 공존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유효경쟁정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압도적인 일등이 못 나오게 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설령 불황이 와도 꼴등이 쉽게 망하지 않는다. 항공사나 해운사도 퇴출이 쉽지 않다. 이처럼 시장논리가 잘 작동되지 않는 분야는 굳이 일등 프리미엄을 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일등기업은 영원히 존속할지 생각해보자. 당연히 아니다. 지금은 일등이지만 언젠가 일등 자리에서 물러날 기업도 있다. 나는 네 가지 정도의 요인으로 일등기업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다. 스마트폰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난 노키아나 디지털카메라 때문에 사라진 코닥 같은 기업들이다. 기술의 변화가 더욱 극심할 앞으로는 정말 잘 지켜봐야 한다.
둘째, 제도의 변화다. 제도가 바뀌거나 새로운 제도가 생기면 일등이 바뀔 수 있다. 1998년도에 펀드시장 활성화를 위해 뮤추얼펀드 설정이 허용된 적이 있다. 미래에셋이 자산운용사들의 선두에 서는 중요한 계기였다.
셋째, 소비자의 기호 및 소비층의 변화다. 늘어나는 소비층을 주목해야 한다. 노인인구와 모바일인구, 1인가구 같은 소비층이다. 소비자의 태도나 취향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넷째, M&A다. 신일본제출과 포스코가 철강산업의 선두그룹이었을 때 인도의 미탈스틸이 M&A를 통해 일등에 오른 일이 있었다.
이처럼 위대한 기업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늘 바뀐다는 걸 명심하자. 일등기업의 논리와 한계, 그리고 일등기업이 어떻게 뒤바뀔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렇다면 일등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일등기업이 속한 산업의 속성이나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다를 수 있다.
소비재산업에 속한 일등기업이라면 강력한 브랜드 가치가 필요하다. 네트워크 산업이라면 충성도 높은 가입자 수가 중요하다. 기술적 진보가 빠른 IT산업은 원가경쟁력이 관건이다. 이동통신이나 소주처럼 성장이 멈춰버린 시장은 시장점유율이 중요하다. 자원주의 경우에는 양질의 매장량이 일등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이외에도 많을 것이다. 이 탐구의 영역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어떤 기업이 일등기업인지도 알아봤다. 그렇다면 강방천이 말한 일등기업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대부분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삶 속에서 만나는 기업들이다. 지금 일등기업은 10년 전, 20년 전에도 일등기업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등기업 주식을 사라고 하면 "저거 얼마 오르겠어?"라며 고개를 흔든다. 이미 많이 올랐고 앞으로 오르더라도 천천히 적게 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등, 삼등 주식에 투자해서 빨리 많은 수익을 내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우리 곁을 지켜준 일등기업들은 한 번도 상한가를 친 적이 없다. 그러나 상한가를 친 기업들은 거의 사라졌다. "내가 산 주식이 상한가를 쳤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종목은 10년 후에 없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일등 자리를 지키는 기업에 관심을 갖고 나의 귀한 돈을 투자하기 바란다.
강방천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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