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가 알아야 할 리스크의 세계_ 김순길, 정의창
투자자가 알아야 할 리스크의 세계
2007년, 사무실에 5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찾아왔다. 투자를 하고 싶은데 어느 곳에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땅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합정동에 부동산 사무실을 두고 합정동에 공동투자를 하고 있던 터였다. 빌라 지분에 따라 가격이 형성될 때였고, 마침 지분율이 좋은 빌라가 있어서 추천해 드렸다.
그녀는 내 조언에 따라 평당 1500만 원에 10평짜리 빌라를 매입했다. 1억 5000만 원 가운데 전세 보증금이 1억 원이니 실투자액은 5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 만에 가격이 평당 2500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투자에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이번에는 평당 2000만 원에 8평짜리 빌라를 한 채 더 매입했다. 1억 6000만 원 가운데 전세 보증금이 1억, 나머지 6000만 원은 대출을 받았다. 이 빌라 역시 가격이 계속 올랐다. 이제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갖게 된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투자를 권유해 딸도 합정동의 10평짜리 빌라를 평당 2800만 원에 매입했다.
부동산 경기는 호황이었고 평당 1500만에 형성되어 있던 가격이 두 배가 넘는 3500만 원까지 상승했다. 너무 올랐다고 생각했다. 오를 만큼 올랐으니 더 이상은 거품이라고 판단해 당시 투자를 권유했던 이들에게 매도를 권유했다. 그녀에게도 이제는 팔 때라고 조언했다.
"부동산도 생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물이 좋고 싱싱할 때 팔아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요. 더 이상 오르기는 힘들 겁니다. 지금이 가장 싱싱할 때에요. 매도할 타이밍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동의하지 않았다. 분명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더 가지고 있다가 지금보다 더 많이 받고 팔아야 한다며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욕심으로 인해 장밋빛 미래의 환상에 빠진 그녀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그녀가 오랜만에 사무실에 찾아왔다.
"대표님이 틀렸어요. 더 올랐어요. 평당 4000만 원이 넘어요. 지금."
"4000만 원이나요? 그 돈을 주고 사람들이 삽니까?"
"사다마다요. 나도 한 채 더 샀는걸요."
"얼마에 사셨습니까?"
"4300만 원이오, 9평짜리에요."
"융자 받으셨을 텐데, 지금 이자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부군 월급이 이자로 다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를 보는 거죠. 난 6000만 원까지 갈 거라고 생각해요. 대표님도 알다시피 한강 르네상스 계획 발표되고 합정동이 전략정비구역으로 정해졌잖아요. 개발이 시작되면 분명히 6000만 원까지 갑니다. 그때를 위해 지금 무리해서라도 투자하는 거죠."
한강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발표된 후 합정동은 한강변 통합 관리 지역 가운데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건 사실이었다. 합정지구는 매력적인 투자처임에는 틀림없었다. 용산국제업무단지와 상암DMC의 중간에 위치하고, 2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합정역이 가까이 있으며, 양화대로와 강변북로를 이용해 도심과 강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빌라와 단독주택들이 밀집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단독주택을 헐고 신축 빌라들을 짓고 있었다.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 어떤 기업들이 개발을 할 것인가. 그러나 그녀는 이미 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계속 매도를 권유하니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몇 달 후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백만 원씩 떨어지더니 지분가가 평당 3100만 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자를 못 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손해 보지 않고 매도할 수 있게 중개를 해달라고 했다.
"휴, 이럴 줄 알았으면 대표님이 팔라고 할 때 팔 걸 그랬어요. 아, 어쩌면 좋아요.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는데.... 대표님은 전문가시니까 팔 수 있으시지요? 팔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부동산 중개를 접고 부동산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손해 보지 않고 팔기는 불가능했고 내가 팔아주기도 어려웠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그녀는 부동산을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투자해 3500만 원까지 갔을 때 매도한 사람들은 상당한 매매차익을 남겼지만 그녀는 기껏 투자해서 빚잔치만 벌이고 끝났다. 아마도 그녀는 다시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부동산에 투자했다가는 큰코 다친다고 말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고 부동산 투자로 성공하는 예는 극소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부동산뿐 아니라 그 무엇에 투자해도 실패하게 되어 있다.
부동산 투자의 고수와 초보자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고수는 투자목적이 분명하지만 초보자는 투자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 역시 욕심 때문이다. 초보자는 자신이 투자하려는 부동산이 매매차익용인지 임대용인지 장기개발용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월세수익도 얻고 싶고 매매차익도 남기고 싶다. 이렇게 되면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기회가 와도 매매하지 못한다.
투자의 목적이 분명해야 할 뿐더러 얼마의 수익을 얻는 것이 목표인지도 분명해야 한다. 임대수익을 한 달에 60만 원으로 정했다면 그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수요도 많은 것 같고 주변 시세보다 싼 것 같아서 70만 원으로 올린다면 그때는 공실이 생길 수 있다. 공실이 생기면 한 달에 50만 원, 40만 원 받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매매차익이 목적일 때도 얼마가 되면 팔겠다는 기준이 있어야 욕심 부리다가 매도 타이밍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욕심이지 부동산이 아니다. 정석대로 정직하게 투자하면 부동산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같은 상담, 다른 결과
2013년도의 일이다. 세미나에 온 어느 40대 여성이 강의가 끝나고 난 후 상담을 요청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솔직했다.
"투자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가진 돈이 5000만 원이 전부예요. 이 돈으로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까요?"
투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자기 집은 있고 홍대 부근에서 냉면 가게를 하며 모은 돈인데 이 돈을 잘 불려서 딸아이가 크면 결혼할 때 목돈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재테크의 필요성은 늘 느끼고 있었으나 주식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저축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자가 얼마 안 되니 결국 부동산 투자만 남더라고 했다.
"혹시 생각하시는 데가 있나요?"
"소형 아파트가 어떨까 하는데요. 성산시영아파트는 어떨까요?"
"성산시영아파트는 이미 가격이 많이 올라서요. 지금 갖고 계신 돈으로 투자할 만한 곳으로는 빌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합정동 유도정비구역에 있는 신축 빌라가 있습니다. 5000만 원으로 충분히 투자해볼 만합니다."
그렇게 그는 내가 소개해 준 빌라를 1억 8500만 원에 매입했다. 월세 보증금 2000만 원에 은행 융자 1억 2000만 원, 실제로 투자한 돈은 4500만 원이었다. 월세는 7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당시 은행 대출 이자가 5% 정도였으니 매달 나가는 이자 45만 원을 제외하면 월 순수익은 25만 원이었다. 투자 금액이 4500만 원이니 수익률은 6%, 적당한 수준이었다.
얼마 전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처음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 새입자가 들어왔다고 했다. "지금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이에요. 이렇게 찾아온 것은 지금 팔아도 될까 싶어서요. 부동산에 물어보니 그 집이 2억 3500만 원으로 올랐다고 하네요. 지금 파는 게 좋을까요?"
2년 만에 5000만 원이 올랐으니 지금 팔아도 상당한 매매차익을 실현하는 셈이지만 주변의 신축 빌라들은 2억 5000만 원까지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직 팔지 마시고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직 호재가 많습니다."
큰 욕심 내지 않고 현실 감각도 있는 그녀는 2년 후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친구도 내게 상담을 받았었다. 역시 같은 지역의 빌라를 권했고 그녀의 친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상담을 끝내고 돌아가서는 부동산중개소의 권유로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학교 부근의 한 상가에 투자를 했다.
내가 아는 한 그쪽 지역은 업무 타운이 많지도 않고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모든 부동산이 그렇지만 특히 상가는 위치가 무척 중요하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입지를 분석해야 한다. 같은 건물이라도 앞 다르고 뒤 다르기 때문이다. 1층이냐 2층이냐, 코너냐 중앙이냐에 따라서도 수익에 큰 차이가 난다.
지금 그녀의 친구는 임대료도 못 맞추고 있다고 했다. 미용실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한참 비어 있다가 옷가게가 들어와서는 얼마 안돼 또 나가고 하는 식이다. 집이라면 임차인을 들이지 못했을 때 내가 들어가서 살기라도 할 수 있지만 상가는 그렇지가 못하다. 잘못사면 골치 아픈 일이 여럿 생긴다.
짐작컨대 그녀의 친구는 아마도 친구가 얻고 있는 6%의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부동산중개소가 제시하는 수익률에 욕심이 났을 것이고, 결국 같은 상담을 받고 다른 선택을 했다. 언제나 욕심이 문제다.
상담을 해보면, 욕심도 편견도 고집도 많은 사람들이 흔하다. 어디에 투자해야 좋을지 물어보지만, 10분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속에 이미 답을 갖고 온 경우가 많다. '네 말이 맞나 어디 보자' 하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도 있다. 조언을 들으러 와서 조언을 듣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또 손꼽히는 세계의 부자들, 이를테면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귀재들도 초기에는 부동산으로 부의 토대를 만든 것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힘든 것이다. 즉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있어 그에 따라 투자처를 선택하고, 뚜렷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부동산업에 입문할 무렵 우연히 부동산 관련 칼럼을 한 편 읽은 적이 있다. 늘 부동산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부동산업의 길을 가야겠다는 더욱 확고한 의지를 갖게 해준 칼럼이다. 오래전 일이라 필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한 사내가 있었다. 직업은 회사원, 재산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단독주택 한 채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집은 시가가 15억원이나 했고, 자기 소유의 집이 생기자 사내는 욕심이 생겼다. 사업을 해보자. 사내는 집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성실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어서 사업은 차차 자리를 잡아갔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사내는 자금이 더 필요해졌고 결국 집을 팔기로 했다. 15억 원에 집을 팔면서 사내는 마음속으로 굳은 결심을 했다.
'내가 지금은 돈이 필요해서 이 집을 팔지만 반드시 사업을 키우고 돈을 벌어서 다시 이 집을 사리라.'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날, 사내는 집을 산 부부에게 말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사려 있는 집입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남겨주신 집이고요. 나중에 꼭 다시 살 겁니다. 그때 제게 꼭 팔아주십시오."
사내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휴일도 없이 일에 매달렸고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 한 번 못 가고 사업을 일구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 50억 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사내는 이제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 집을 되찾을 때라고 생각했다. 다시 그 동네를 찾아갔다. 집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부동산중개소에 들어가 집값을 물었다.
" 그 집이 50억 원이 넘습니다. 아마 그 돈을 준다 해도 집주인은 팔지 않을 겁니다. 이 동네 땅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요."
사내는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십수 년을 죽을 만큼 일했지만 결국 가만히 집을 지키고 있는 것만 못했던 것이다. 부동산은 그런 것이다.
나는 매일 부동산으로 출근한다_ 김순길, 정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