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매매_ 홍지안
이소액씨는 적은 금액을 큰 금액으로 불린 대표적 케이스다. 그는 주식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어 주식에 관심을 가질 시간도 부족하고, 매매할 시간조차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증권사 직원을 통한 일임매매였다. 먼저 2,3개 종목을 추렸다. 그가 추린 종목들의 공통점은 '실적이 꾸준하고, 주가가 높지 않으며, 연간 주가의 변동성이 크고 일정한 종목'들이었다.
증권사 직원을 통해 자신이 지정한 종목이 떨어지면 사고, 오르면 팔도록 일임해 두었다. 1천 원~2천 원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박스권 종목이 있다면, 1,100원 정도에 사서 1,900원쯤에 판다. 매수하는 타이밍은 1천 원이 되는 시기가 아니라 주가가 1천 원을 찍고 다시 반등하여 1,100원이 되었을 때이다. 아무리 박스권을 오르내리는 종목이라고 할지라도, 주가라는 것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을 확인하고 올라오는 시점에서 매수한다. 1천 원이 붕괴된 후 이 가격을 회복하지 않으면 절대 사지 않는다.
그 이하로 떨어져 박스권 하단인 1천 원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기업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식을 팔 때도 2천 원이 되는 시점이 아닌, 2천 원을 찍고 1,900원까지 내려오는 시점이다. 마찬가지로 박스권을 등락하는 주식도 이번에는 2천 원을 뚫고 더 크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스권에서 등락하던 주식이 2천 원을 넘어 3천 원, 4천 원, 그 이상도 오를 수 있으므로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 경우에는 전략을 수정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버티다가 더 큰 수익을 거두고 판다. (중략)
이런 목적으로 투자했던 3천만 원이 몇 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은행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한 자금이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무리하지 않고, 안전하게, 욕심내지 않은 투자결과였다. 떨어지면 사고 오르면 팔자는, 마음 편한 투자원칙 치고는 상상이상의 결과다.
하지만 그의 투자법은 결코 나쁘지 않은 고수의 투자법이다. 의도야 무엇이든 결과가 그렇다는 의미다. 특히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개인들이 참고할 만한 투자법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확장되던 청년기 시절에는 몇 배에서 수십 배 폭등하는 종목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는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경제의 급속한 팽창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주가 상승만을 바라보는 투자가 아닌, 주가 변동성을 이용한 박스권 투자가 유리할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하지 않아도 펀더멘탈에 이상이 없는 한 주가는 1천 원에서 2천 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5천 원~1만 원, 1만원~2 , 5만 원~10만원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종목들도 있을 것이다. 국가경제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기업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지만, 주가는 언제나 변동성을 그리며 오르내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투자심리를 비롯한 계절적 요인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결합하여 이유 없이 주가가 오르고 내리기 때문이다. 실적이 변함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종목들은 박스권 하단에서 사서, 박스권 상단에서 파는 전략을 취한다. 한 종목으로 여러 번 수익을 반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하단 매수, 상단 매도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때로는 박스권 하단에서 상단까지 가는 동안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맞는 투자를 하겠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아야 성공한다.
또한 종목을 고를 때는 비교적 탄력이 좋은 종목이 좋다. 우량주와는 또 다른 전략으로, 우량주는 종목이 무거워서 변동성이 크지 않다. 반면 시가총액이 적으면서 기업 실적이 탄탄한 종목들은 주가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거기에 주가의 성장 잠재력도 있다면, 박스권 매매를 하다가 주가가 박스권 상단을 돌파하여 지속 상승할 경우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앞서 배당주에 투자했다가 10배 상승의 기쁨을 맛본 경우처럼 말이다.
주식의 고수들, 아니 고수는 아니더라도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의 패턴은 비슷하다. 모두 느긋하게 투자했다는 것이다. '주식은 빨리, 부동산은 천천히'라고 생각하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듯 느긋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주식에 투자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자에서 주식투자자로 넘어온 사람들의 투자결과가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자신이 흐름을 아는 종목에만 투자하며 결코 많은 종목을 오가지 않는다. 매우 단순하다. 문제는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알고보면 너무나 쉬운데, 바닥에 사서 꼭지 혹은 올라가는 시점에서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파는 투자를 하지 못한다. 주가 흐름을 자주 볼 필요도 없다. 관심을 끊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 아침에 한 번 보고, 점심 먹고 한 번 보고, 장이 끝날 무렵 한 번 보고, 퇴근하면서 한 번 보면 된다. 그조차도 힘들다면 증권사에 일임하여 살 타이밍과 팔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해두면 된다.
2천 원이던 주가가 하락하면 1천 원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1천 원이 오면 조금씩 주식을 사모아 간다. 절대 무리하지 않고 주가가 떨어져도 괜찮을 만큼만 산다. 이익이 나면 원금을 반드시 인출하고 이익금만으로 투자를 계속한다. 종잣돈 모으기에는 이 방법이 가장 좋다.
사실 돈 벌기 너무 좋은 세상이다. 하루종일 증권사 HTS를 쳐다보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전업투자자로, 혹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전업투자자처럼 수시로 주가를 확인하는 사람 치고 돈 버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가 창을 보고 있으면 수시로 가격이 변동되기 때문에 투자심리를 유지할 수 없다. 오르면 어서 빨리 사서 수익을 거두고 싶고, 떨어지면 공포가 밀려와 남보다 일찍 팔고 싶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올라도 팔고 싶고, 조금만 떨어져도 추가로 사고 싶어진다. 지속적으로 하락이 진행되는 종목일수록 개인투자자들이 많이 물려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지면 싸다는 이유로 덜컥 샀다가 계속 떨어지면 물타기라는 명목으로 계속 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진 돈 전부를 한 종목에 소위 '몰빵'하게 된다. "이러다가 대주주 되겠네" 하는 개인투자자들의 볼멘소리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처럼 주식 창을 수시로 응시하면 결코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느긋한 투자, 관심 없는 듯 관심을 두는 투자가 좋다. 오히려 주식 창을 볼 시간에 동료들과 재테크 모임이라도 만들어서 정보를 교환하는 데 시간을 쓰는 편이 낫다. 점심시간을 단순 휴식이나 수다로 보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시간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2000년 이후, 한국의 신흥 부자들_ 홍지안